제목: 태도에 관하여 | |
작가: 임경선 | |
기간: 2015.09.29~2015.10.01 | |
[usr 3.5] |
어떤 태도는 마음에 와 닿음
p.18 ~ p.19
“일단, 어쨌든, 움직여보는 것의 중요함을 통감했다. 게다가 생각하는 것에만 너무 중점을 두다 보면 자칫 행동하지 않을, 움직이지 않을 부정적인 이유를 만드는 데 생각이 더 쓰인다. 나한테는 무리니까, 난 이것밖에 못하니까, 라며 스스로에 대한 선입견을 만든다.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나를 ‘이렇다’라고 단정 짓는 것이다.
나에겐 뭐가 있지? 내가 뭘 할 수 있지? 이렇게 생각이 뻗어나가면 또 하나의 내가 나를 바라보며 비웃고 있다. 넌 아무것도 못하잖아. 그냥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 그게 무난해.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보기도 전에 ‘아냐, 됐어. 나 따위가 뭘’이라며 부푼 마음을 누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자신의 수준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나한테는 이것이 최선이야, 라고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큰 용기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동을 일으킨 다음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머릿속에서 선만 긋는 것과는 다르다. 확고한 생각이나 단단한 가치관이 되어주는 것들은 내가 자발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체득된다. 생각이 행동을 유발하지만 사실상 행동이 생각을 예민하게 가다듬고 정리해준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일단 그 상황에 나를 집어넣어보는 것이 좋다. 가장 확실한 리트머스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용기는 그래서 필요하다.
– 생각의 순간”・・・
p.31
“그래도 이 회사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품지 못한다면 나의 적성과 재능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를 내리고 새로운 길을 터나가야 한다. 제일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면서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 새롭게 길을 선택해도 언젠가는 객관적인 평가와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두렵거나 싫다고 한다면, 자존심을 다치면서까지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는 않다면, 애초에 답이 없는 것이다.
– 사람이 일하는 곳 그 어디라도”・・・
p.64 ~ p.67
“”과거에 이런 일이 있어서…”
“우리 가족이 이래서…지금의 내가 이렇게 자존감도 없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이 서른 넘어서까지 그럴 수는 없다. 어느 시점이 되면 어떻게든 꾹 삼키고 알아서 처리해버려야 한다. 애초의 원인 제공자가 누구든, 누구나가 인생의 한 시기에는 저마다의 지옥을 품고 가는 것이고, 훌쩍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라는 과거에 휘둘리면서 고여있기를 자처하면 슬슬 그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기량이나 자립도를 묻게 된다. 더구나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부모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문제들의 이유로까지 확대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가장 이상화된 부모 자식 관계에 내가 겪은 환경을 비추어보고 ‘난 남들이 당연히 가진 걸 가지지 못했다’고 부모에게 복수심과 울분을 품는데, 그렇게 치면 우리 중에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또한 장차 울가 부모가 되었을 때,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또 몇이나 될까.자식은 부모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어른이 된다. 성장은 나의 부모가 나처럼 한낱 불완전한 인간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부모와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하지 못할 바에는 물리적으로 벗어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가족 운이 없다고 자조하고 떨쳐버리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가급적 빨리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부모 품을 벗어나는 것이 서로를 돕는 길이다.
거리를 두는 일은 완벽한 부모 자식 관계를 투사하여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들을 탓하지 않고 성인 대 성인,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대하며 의존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내 손에서 놔버려야 비로소 해결되기 시작하는 문제가 있고, 그러면서 점차 극복할 용기가 내안에서 우러날 것이다.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며 계속 부모 이슈를 붙들고 산다면 어쩌면 내가 일부러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는 게 아닌지 냉정하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상처를 소중히 하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은 그 상처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그 외에 소중히 할 만한 게 별로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상 그쯤 되면 그건 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 것이다.
– 같은 불완전한 인간”・・・
p.73
“결혼하면 “너를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은 그 순간에는 진심이겠지만 배우자 포함 그 어떤 가까운 인간관계도 나의 인생을, 나의 행복을, 내가 외롭지 않음을 보장해줄 수는 없다. 고독은 스스로 떠안고 처리해야만 할 것 같다.
– 네가 내 곁을 떠난다 해도 인생은 계속될지도 몰라”・・・
p.94 ~ p.95
“혼자서 잘 서 있을 수 있어야 타인과 함께 있을 때도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마음이 통하지도 않는 누군가로 공허함을 가짜로 채우기보단 차라리 그 비어 있는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만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들과 있어야 진정으로 나답고 편안할 수 있을지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인간관계 스트레스 대처법”・・・
p.162 ~ p.163
“나는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자신이 좋아하는 일 혹은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박은 버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인생은 살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고 싶었고 시도나 노력도 해보았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지금은 이 일을 한다, 그리고 이 일에선 내가 좋아하는 요소도 분명히 몇 가지가 있다, 는 것도 존중받아야 할 삶의 방식이다.
‘꿈을 가지긴 가져야 하는데 무슨 꿈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다’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특히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갓 졸업한 이들이 ‘나의 천직을 찾지 못하겠다’고 괴로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나이 대에 자신이 뭘 원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안다고 확신해도 나중에 바뀔 확률이 훨씬 높다. 사회에 나가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하나둘 차차 알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헤매면서 찾거나, 결국엔 찾지 못했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 나름의 보람을 발견해간다.
– 나를 쉽게 위로하지 않을 것”・・・
p.193 ~ p.194
“자존감이 소중한 것은, 나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쓸 때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상대의 결핍이나 불완전함을 이해할 포용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에 묶여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이나, 자신의 껍데기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서도 역시 가혹하거나 깎아내리려 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의식은 강하지만 자존감은 낮아 자신의 문제를 상대에게 투영함으로써 해소한다. 자존감이 낮다면서 자기 연민에 빠져 우울해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감정 노동 시키며 기를 빼앗는다.
– 나를 존중하기”・・・
p.196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내키는 만큼 감정과 헌신을 보여도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기쁨이 되어야지 그것이 ‘노력’이 되고 ‘무리’가 되면 나중에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무리하는 게 왜 좋지 않냐면 무리는 공짜가 아니라 항상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 나를 존중하기”・・・
p.254
“경선: 저는 하면 된다, 라는 명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말은 적어도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자발성이라는 측면의 첫 단추, 처음으로 껍데기를 깨고 걸어 나가는 것까지는 무조건 내가 해야 되는 거죠. 그다음부터는 천천히 갈 수도 있고 뛰어갈 수도 있지만요. 그 스피드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어쨌든 껍데기를 깨는 거는 나밖에 할 수 없다는 거. 가장 중요한 진실이죠.
– 대담: 임경선x김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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