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
작가: 다니엘 튜더 | |
기간: 2015.09.08~2015.09.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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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니 갑갑해짐. 어째서 나의 삶은 이런 시대에 태어난 것인가. 그래도 뭐 격변의 시대에 태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망해가는 걸 목격하고 있는 기분.
p.21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치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느냐가 문제다. 결국 우리는 우리 수준에 걸맞은 정부를 갖게 되어 있다. 우리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사회를 생각하고, 정치인의 빈말이나 현실성 없는 공약에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민주주의는 잘 동작할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의 예처럼 정치문화가 유아기로 퇴행할 때, 민주주의가 실패한 제도처럼 보일 뿐이다.
– 서문: 민주주의는 후퇴하지 않는다. ”・・・
p.32
“홍보 친화적이면서 모호한 정치적 수사는 실체 없는 허언이며, 장기적으로 해악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와 짝을 이룬다.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텅 빈 정치 구호로 당선된 정치인은 눈앞의 이득을 얻지만 국민의 삶은 한층 고달파진다. 값싸고 맛있지만 금방 배가 꺼지고 몸에도 좋지 않은 맥도날드 버거 세트를 닮았다. ‘새정치’ 같은 문구를 한번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많은 것을 약속해주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듣기도 싫지 않은가?
– 유치한 쇼,쇼,쇼”・・・
p.33
“더 실망스러운 것은 그 같은 전략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먹히는 전략이 아니라면 후보들이 4년에 한 번씩 분식집에 가고 ‘희망’, ‘소통’, ‘국민과 함께’를 내세우지 않을 테니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시민의 의식 수준에 걸맞은 정치인을 갖게 마련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 매우 높은 평균 근로시간 때문에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쉽지 않다. 강남에 산다는 박원순의 집이나 나경원이 다녔다고 상대 후보들이 주장한 피부과 등을 후보들이 내세우는 정책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는 언론 환경도 문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민주 시민이 나서서 “이제 그만!”이라고 선언하고 후보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 유치한 쇼, 쇼, 쇼”・・・
p.44
“박근혜에 대한 비판은 한국에 대한 비판이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을 비판한 사람은 좌파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한국 정치, 언론,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내러티브를 반영한다. 비판하는 사람들을 모두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는 비민주적 담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논리대로라면)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은 민주주의 신봉자가 아니라 독재를 옹호하는 자가 된다.
– 민주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p.52
“가끔 필자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위축 효과 이야기를 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한국은 영국이나 미국과 다릅니다. 한국은 정치문화가 성숙하지 못해서 엄격한 법이 없으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필자는 한국은 다르다며 자국을 폄하하고 서방 국가를 특별 취급하는 논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혹시 거기에는 서구인들은 정치적으로 성숙한 어른이고 한국인들은 어린이라는 발상이 깔려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논리일지 모르지만, 자국민을 모욕하는 발언임은 물론 사대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 자유를 훼손하는 명예훼손법”・・・
p.61 ~ p.62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이 대놓고 독재를 휘두르기보다 교묘한 언론 플레이를 하거나 미묘하게 언론을 통제하는 것이 더 쉬운 통치 방법임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언론 환경’이 민주주의 실질적 전장이 되고 있다.
– 언론의 나팔 소리”・・・
p.73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남성들조차 여성 문제에 관해서는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겪게 되면 보수주의자들도 깜짝 놀랄 것이다.
좌우를 구분하는 잣대가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이를 정의하는 기본 개념 자체가 내부적으로 상당한 모순을 가지고 있기는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캐나다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특정 정치인이 좌파나 우파로 규정될 때 적어도 그들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철학이 없는 가짜 보수와 진보”・・・
p.76
“사회 전반에 불평등과 불만족이 증대되면서 “정치인들은 그 나물에 그 밥””정치인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나”라고 푸념하는 유권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또한 진정한 의미의 선택도 없다고 느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해도 새정치연합에 불리할 뿐 새누리당은 건재하다. 한국에서 새누리당은 일단 기본으로 설정된 전제조건임을 인정해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수백만의 노년층은 무조건 새누리당을 찍는다. 반면 젊은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유인이 필요하다.
– 철학이 없는 가짜 보수와 진보”・・・
p.83
“한국에서는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이냐는 것이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인의 덕목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필자는 똑똑한 것뿐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을 살아왔는지, 공직에 헌신하려는 의지가 있는지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대답하겠다. 선거철이 아닐 때도 요란한 홍보 없이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가? 여느 정치인처럼 국회의원 자리가 목표인가, 아니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려는 마음이 더 큰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 편한 때도 굴하지 않고 소신 어린 발언을 했는가?
– 영웅은 없다”・・・
p.86 ~ p.87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토크콘서트는 실질적 사상을 논하거나 논의를 펼치는 장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토론과는 반대 양상이 나타난다. 토크콘서트는 한국 정치와 마찬가지로 연사에 대한 경외감을 기반으로 하는 하향식 의견 전달 구조에 가깝다. 토크콘서트는 소위 전문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나머지 사람을 평범한 관중으로 전락시킨다. 토크콘서트 대신 진정한 의미의 열린 대화가 자리잡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 일을 마치고 유명인사의 강연을 들으러 가기보다 술집이나 가게에 들러서 정치, 사회 이슈에 대해 함께 토론할 수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보자.
– 영웅은 없다”・・・
p.100
“뉴요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저 코언은 음모론을 “힘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표현했다.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고 자신의 삶에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모든 문제가 정보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탓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이 정확한 정보에서 소외되고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율성도 확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 음모론 전성시대”・・・
p.103
“음모론은 힘없는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일 수도 있으나, 힘없는 자들을 계속 힘없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크게 실망할 만하다. 먹을거리의 안정성 문제도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시각에 들어맞는다는 이유로 가능성은 있지만 개연성이 적은 음모론을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면 나의 주장과 논리가 통째로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분노할거라면 합당한 근거를 기반으로 해야한다.
– 음모론 전성시대”・・・
p.189
“전임 대통령의 엉터리 재테크만 아니었어도 북한의 잠재적 위협에 더 잘 대응할 무력 증강에 더 많은 예산을 할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기회를 날려버렸으니 전임 대통령은 빨갱이였나보다!
– 복지는 투자다”・・・
p.203 ~ p.204
“골드만삭스 한국 지사는 의도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을 더 많이 고용한다. 나는 이를 다룬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기사에서 골드만삭스의 여성 중심 고용을 ‘젠더 차익 거래’라고 이름붙였다. 골드만삭스 취재원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여성을 잘 고용하지 않고, 고숙련 여성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아서 경쟁할 필요도 없이 최고의 여성 인력을 뽑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골드만삭스는 가치절하된 자원을 확보함으로써 비즈니스 우위를 끌어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친여성정책은 사실 기업에 ‘비용’이 아니다.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아저씨들의 전횡을 방지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기업에 득이 된다.
필자는 한국의 투자회사 두 곳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두 기업 모두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골드만삭스와 사뭇 달랐다. 한 회사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기업이고, 다른 기업은 작은 회사였는데 파산했다. 유명한 투자회사에서 일할 때는 필자가 외국인이고 영어권 화자라는 이유만으로 영어 면접에 차출되었다. 면접은 상당히 프로페셔널하게 진행됐지만, 면접까지 올라온 사람들의 성비를 보면 역시 남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그중 한 여성 지원자는 외국인 손님이 많은 이태원 술집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영어 구사가 편하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채용 담당자는 그 지원자를 두고 분명 외국인 남자 친구를 많이 사귀었을 테니 채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로 채용 담당자는 여성 지원자와 외국인인 나를 동시에 모욕했다. 몰상식한 사람은 돌 한 번 던져서 두 마리의 새를 한꺼번에 죽일 수도 있다.
작은 회사에서는 더 심각했다. 그곳에서는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여성을 뽑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통했다. 짐작하건대 마초 분위기를 흐리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 모든 것은 프레임에 달려 있다”・・・
p.211
“역대 한국 정부는 하나같이 안보의 중요성은 외치면서 안전은 외면해왔다. 하지만 안전이야말로 정부 존립의 핵심이다.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 모든 것은 프레임에 달려있다.”・・・
p.218
“문화도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식 변화가 가장 빠른 부문은 동성애 문제로 나타났다. 물론 젊은이들이 인식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진보 정치인들은 조용기 같은 기업화된 교회 목사들 앞에서 꼬리를 내릴 것이 아니라 보다 평등한 동성애자 권리보호정책을 들고 나와야 한다. 사실 개신교의 로비는 성 소수자들에게 오히려 득이 되는 것 같다. 보수 기독교 세력이 정치적으로는 힘이 있을지 모르지만 대다수 한국인들은 부자, 꼰대, 대형 교회를 짜증스럽고 위선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보수 기독교 단체가 성 소수자 권리 보호 움직임에 발악하고, 증오를 퍼부으며 결사 반대함으로써 성 소수자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다. 보수 기독교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합리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성 소수자 권리를 수용하느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 같다.
– 모든 것은 프레임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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