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름 없는 독 | |
작가: 미야베 미유키 | |
기간: 2014.07.10~2014.07.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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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이유, 이름없는 독까지. 분명 8년이나 10년 전쯤 일본에서 출간된 그 당시의 일본을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한국 사회를 보는 것 같다.
화차가 신용불량으로 다른 사람의 신분을 도용하고 사는 삶, 이유가 부동산 폭락과 가족 붕괴로 나타난 사건이라면, 이름없는 독은 무차별 살인과 이력서 위조를 다루고 있다. 요즘 발행되는 신문의 사회면에서 봐도 이상할게 없는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정상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은 글로만 봐도 스트레스 받는다. 주목 받고 싶어하길 원하는 사람이 주목받지 못하자 부리는 난동은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건가. 결국 멀쩡하게 사고하는 사람들만 피해 받는 세상.
저 이름 없는 독은 우리 사회에 너무 넓게 퍼져있어서 어떤 해독제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이대로 공멸…
p.61 ~ p.62
“이 넓은 세상에는 우리의 상식 범위 안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지고, 그 사고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막연히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특히 도시에서 살아가다 보면 싫어도 깨닫게 된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바로 옆에 출현하게 되면 아무래도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게 된다. 화가 나면서도 공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액션으로 연결해야 좋을지는 알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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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3
“우리는 시계와 캘린더의 포로다. 그게 고통의 원흉이 될 때도 있지만, 약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다 할 이유나 근거도 없이 시간이 흐르고 날이 지나기만 해도 걱정거리가 점점 가벼워지는 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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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9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정체를 숨기거나 하지 않는다.”
내 명함을 들여다보며 그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짓을 하는 건 사기꾼이거나 그 비슷한 사람들뿐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결코 그러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평범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짓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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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7
“”내 의견을 한 가지 이야기한다면,” 장인이 언성을 높였다.
“후루야 아키토시 씨를 죽인 범인이나 겐다 이즈미나 같은 부류의 인간이지. 최고 권력을 추구하며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그 권력을 행사해 버린 인간이니까.”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이란 말씀입니까?”
“왜 그렇게 되는지 알겠나?”
“저는 모르겠습니다.”
장인은 순간 눈을 무섭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굶주려 있는 걸세. 그토록 심하게, 깊이 굶주려 있는 거지. 그 굶주림이 자기 혼을 먹어 치우지 않도록 먹이를 줘야 해. 그래서 다른 사람을 먹이로 삼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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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6 ~ p.377
“천식, 편두통, 피부염, 저혈압, 빈혈, 상습적인 현기증이나 구토, 이런 증상을 예전에는 대개 ‘허약 체질’로 치부했었다. ‘마음의 병’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독은 구체적으로 문제가 드러나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지만 정체는 여전히 숨어 있는 상태 그대로다. 하지만 확실하게 사람들의 삶을 좀먹어 간다. 불안이나 초조, 주변의 몰이해에 따른 마음고생 같은 이차적인 피해도 불러온다. 그래서 들어가는 의료비나 경제적 손실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집이 앓고, 땅이 앓고, 사람이 앓는다는 건 바로 나라가 앓는다는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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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5 ~ p.396
“”여기 처음 찾아뵈었을 때 기타미 씨가 겐다 이즈미는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고 평범한 여자라고 하셨죠.”
“예, 그랬죠”
“저는 그 말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그 여자는 거짓말쟁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기타미 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 평범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죠?”
“저나 기타미 씨 같은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럼 특별한 사람이란 말씀인가요?”
“훌륭한 사람이라고 합시다.” 기타미 씨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복잡하고 번거로운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도 없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거나 함께 사는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적어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제대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훌륭하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겐 그게 ‘보통’입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훌륭한 사람이죠. ‘보통’이란 요즘 세상에선 ‘살기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와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화를 내는 거죠, 라고 중얼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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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83
“애당초 스기무라 씨처럼 척 보기에도 풍족한 사람이 그 친구를 접촉한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악의 없이 한 행동이 제일 뒤쳐리하기가 나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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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26 ~ p.527
“겐다 이즈미에겐 독이 있었다. 하시타테에게도 독이 있었다. 하시타테는 그 독을 밖으로 뿜어내 없애려 했다. 하지만 독이 없어지지 않았다. 다만 어처구니없게도 다른 사람의 목숨만 빼앗고, 그의 독은 오히려 더욱 강해져 그를 더 심하게 괴롭혔을 뿐이다.
겐다 이즈미의 독은 어떨까. 그녀의 독은 그녀 자신을 침식시키지는 않았던 걸까? 그녀의 독은 한없이 증식하기 때문에 아무리 토해내도 마르지 않는 걸까.
그 독의 이름은 무얼까.
옛날, 정글의 어둠 속을 누비고 다니던 짐승의 송곳니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짐승이 잡혀, 사자란 이름이 붙여지면서부터 인간은 그 짐승을 퇴치하는 방법을 짜냈다. 이름이 붙여지자 모습도 없던 공포에는 형체가 생겼다.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잡을 수도 있다. 없앨 수도 있다.
나는 우리 안에 있는 독의 이름을 알고 싶다. 누가 내게 가르쳐다오. 우리가 품고 있는 독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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