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태연한 인생 | |
작가: 은희경 | |
기간: 2014.06.12~2014.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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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얘기는 재미없었다. 난 류의 부모 얘기를 더 읽고 싶다.
불행을 숨기지도 과장하지도 않는 가정에서 자란 때문에 류는 고통과 고독을 일찍부터 학습했다. 반면 부모의 불화가 자신의 불행과 인과관계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류의 부모는 호감이 없는 동료와의 직장생활 같은 가정생활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처럼 비겁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불행과 연대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류에게 가르쳤다. 류는 아버지와 어머니 각자와는 행복의 관계를 맺었다. 류가 한국에 들어와 놀랐던 수많은 일 중에는 부모가 이혼했다는 말에 모두가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도 있었다.
P.15
그 침전물이 고통이 아니라 고독이었다는 걸 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난한 유학생이 외국인의 입주 가정부가 되어서 창밖을 바라보며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어떤 여름 오후. 스러지는 햇빛 아래 나무의 긴 그림자가 마치 자신의 인생의 퇴락처럼 힘겹게 빛과 모양을 유지하려 애쓰며 바래가던 날, 어머니는 자기 앞에 다가와 있는 상실의 세계를 보아버렸다.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틀을 지켜야 하고 더이상 동의하지 않게 된 이데올로기에 묵묵히 따라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세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세계를 믿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믿는단 말인가. 상실은 고통의 형태로 찾아와서 고독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두운 극장의 의자에 앉아 모든 것이 흘러가고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고통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전될 것이었다. 하지만 원심분리기 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추출되고 있는 부유물은 고통으로 보이는 고독이었다. 그 봄날의 피크닉이 오랜 우기 끝에 찾아온 찬란 뒤에 불길함을 숨겨놓았듯 모든 매혹은 고독의 그림자를 감추고 있었다.
P.72 ~ 73
알고 있는지, 류. 나의 모든 것은 거짓이다. 내가 거짓된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깨달은 뒤부터.
P.178
마치 천문학자들이 어느 별에선가 시작되어 우주를 통과하는 동안 그 거리만큼의 과거를 갖게 된 빛을 바라보듯이, 그 빛이 담고 있는 천체와 그보다 더 먼 과거로 존재하는 별의 시간을 보듯이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더이상 아무런 회환도 그리움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까지를 보았던 것이다. 자신은 사라져버린 별을 너무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사라진 것은 완결된 것이며 완결된 것은 변하지 않는다. 죽은 것이다.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고독 역시 스스로 의식함으로써 살아 있을 뿐이었다. 이유를 깨달았다거나 시간에 지쳤다거나 하는 명분은 어리석고 공허했다. 어떠 일이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종결되는 것이며 때가 되었다는 말은 그때를 알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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