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제목: 방황하는 칼날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이선희
기간: 2014.06.11~201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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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에 볼까 하고 빌려본 책. 다 읽고나니 영화는 안보기로했다. 영화가 책을 다 표현했을 것 같지 않다. 결정적으로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용의자 x의 헌신도 책보고 영화보려고 했는데 책만보고 영화는 안봤다. 이쪽은 책이 생각보다 재미없어서였지만.

한국에서도 일어나는 문제. 어린 놈들이 자신들은 처벌이 약하다는 걸 알고 맘대로 나쁜짓을 벌이고 다닌다. 결국 피해자 부모가 직접 가해자를 살해한다. 과연 법의 처벌이 아닌 피해자 가족의 복수가 정당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성적으로야 당연히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지만 감정적으로는 역시 복수. 피의 복수 뿐. 어리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너무 잘 알아서 그 법의 헛점을 잘 이용해 먹으니까.

마지막 반전은 생각하지 못해서 좀 놀랐다. 그런가, 그래서 영화에서 이성민이 그 경찰을 맡은것인가 하고.

아, 여튼 결말은 마음에 안들어.

 

그는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계속 식칼을 휘둘렀다. 범인에게 복수한다고 해도 원한이 풀리지는 않는다.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내일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복수하지 않으면 더 괴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죽을 때까지 지옥 같은 삶이 계속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불합리하게 빼앗긴 사람은 어디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없다.
P.106

 

그는 문득 생각했다. 만약 에마가 남자였다면 이렇게 끔찍한 꼴을 당하진 않았을 텐데.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여자아이를 가진 부모가 불안한 마음으로 매일을 보내야 하는 세상이 이상한 것이다.
P.128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기 역시 세상을 이렇게 만든 공범자라는 사실을. 공범자에게는 죗값을 치러야 할 책임이 똑같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번에 선택된 사람은 자신이었다.
P.481

 

그러나 이렇게 해서 악을 없앨 수 있을까? 죄인을 격리한다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을 보호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일정 기간 보호받은 죄인들은 세간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다시 죄를 저지른다. 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죄를 저질러도 누구에게도 보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정말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
오리베의 머리속에 이런 의문이 똬리를 틀었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로 ‘악’을 차단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
P.508 ~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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