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환상의 빛 | |
작가: 미야모토 테루 | |
기간: 2014.4.5~2014.4.11 | |
[usr 3.5] |
빨간 책방을 들으며 이동진이 낭독해 준 환상의 빛. 어쩐지 느낌이 좋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수록된 단편 중 환상의 빛이 가장 좋았다. 담담하면서도 먹먹한 느낌이 교차된다.
p.9 ~ p.10
“자, 보세요. 이 근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초록색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바다에 한 덩어리가 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 있지요. 커다란 물고기 떼가 바다 밑바닥에서 솟아올라 파도 사이로 등지느러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작은 파도가 모인 것에 지나지 않답니다. 눈에는 비치지 않지만 때때로 저렇게 해면에서 빛이 날 뛰는 때가 있는데, 잔물결의 일부분만을 일제히 비추는 거랍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 고 아버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대체 사람의 어떤 마음을 속이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러고 보면 저도 어쩌다 그 빛나는 잔물결을 넋을 잃고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풍어豊漁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는 이 근방 어부 나부랭이들의 흐리멍덩한 눈에 한순간 꿈을 꾸게 하는 불온한 잔물결이라고, 아버님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에게는 좀 다른 의미가 있는 듯했습니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것 일 뿐, 그게 대체 어떤 것인지 저로서는 알수가 없습니다. “
・・・
p.12
“유이치를 데리고 이곳 세키구치 다미오의 집으로 시집 와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저는 당신이 죽은 그날부터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해온 마음속의 혼잣말을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
・・・
p.59 ~ p.60
“길에는 저와 그 남자밖에 없었습니다. 털장갑을 낀 손으로 머리에 감고 있던 머플러를 누르면서 저는 흠뻑 젖은 채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때 아주 시커멓던 하늘도 바다도 파도의 물보라도 파도가 넘실거리는 소리도 얼음 같은 눈 조각도 싸악 사라지고 저는 이슥한 밤에 흠뻑 젖은 선로 위의 당신과 둘이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봐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뭘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피를 나눈 자의 애원하는 소리에도 절대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었구나,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당신은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이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저는 뒤를 쫓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순식간에 멀어져 갔습니다. “
・・・
p.60
“이제 아무래도 좋아, 행복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죽는다고 해도 좋아. 뿜어져 올랐다가 흩어져 날아가는 커다란 파도와 함께 그런 생각이 자꾸만 가슴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당신이 죽었다는 것을, 저는 그때 확실히 실감했던 것입니다. 아아, 당신은 얼마나 쓸쓸하고 불쌍한 사람이었을까요. 눈물과 흐느낌, 저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언제 까지고 울었습니다. “
・・・
p.80
“당신을 잃어버린 슬픔은 저 자신조차 몸이 떨릴 정도로 이상한 것으로, 그것은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억측이 미치지 못하는, 아무런 이유도 발견되지 않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발을 동동 구를 만한 분함과 슬픔이 가슴속에 서리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함과 슬픔 덕분에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을 위한 각별한 노력이나 궁리를 한 것도 아닌데 다미오 씨와 도모코는 이제 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도 유이치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키구치 집안 사람이 다 된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뒷모습에 말을 거는 것으로, 위태롭게 시들어버릴 것 같은 자신을 지탱해왔는지도 모릅니다. “
・・・
p.80
“당신의 뒷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불행이라는 것의 정체가 비쳤습니다. 아아, 이것이 불행이라는 것이구나, 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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